제목 | 내가 만난 어떤 암환자 - 컬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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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애항 |
작성일 | 2005-08-31 08:55:59 |
얼마 전 50대의 작업복 차림을 한 남자 한 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어제 TV를 보았는데 항문에서 피가 나오면 암일 가능성이 많다구 하던데 오늘 아침 제가 변을 보다가 피가 많이 나왔어요. 혹시 암은 아닐까요?”
앉자마자 다급하게 질문해대는 그분을 진정시키며 우선 검진을 해보자고 말씀드린 후 진찰대에 눕혀 직장항문수지검사를 하였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3~4도의 내치핵으로 인한 출혈일 터이지만, 그 분의 항문을 검진해보니 불행스럽게도 암으로 생각할 만한 굵고 단단한 혹이 항문 근처의 직장에서 만져졌다. 우리나라 통계에 의하면 대장암은 인구 10만명당 남자 9.8명, 여자 8.4명의 빈도를 보이고 있으니 0.01%(1/10,000)의 가능성이 그에게 적중되어 버린 것이다.
그 혹은 항문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절제수술을 한다하여도 암의 치료를 위해 항문을 없애고 복벽에 인공항문조성술을 실시하여야 할 가능성이 많은 상태였다.
그는 큰 회사를 경영하였었지만 IMF때 부도가 난 후 어렵게어렵게 재기의 기회를 잡아 컨테이너 박스를 사무실로 개조해내는 회사를 만들었고,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면서 사업의 기반을 닦아나가고 있었다 하였다. 재기의 꿈을 꾸던 그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언을 받은 것이다.
확진을 위한 조직검사를 받을 것을 권유하였지만 그의 주머니에서는 연신 핸드폰이 울려대고 있었고, 통화내용을 어깨 너머로 들어보니 거래처로부터의 호통이었는데 시간을 못 맞추면 거래를 취소하겠다는 요지인 것 같았다.
그는 그 전화에 제대로 변명도 못하다가 암선고로 인한 좌절을 느낄 틈도 없이 다음에 오겠다며 황망하게 진료실을 나갔고 그 뒤로도 보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내시경검사를 할 수 있었으며 조직검사결과 암으로 확진을 받았다.
수술을 위해 3차병원을 소개해 드렸지만 그는 “내가 없으면 회사는.....”하며 눈에 가득 눈물을 머금고 안타까워하였다.
간곡히 권유하여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고서야 겨우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그의 눈물이 눈에 선하다.
소설 같지만 진료실에서 내려지는 암 선고는 어느 누구에게나 예측하지 못하였던 벼락같은 충격이다.
그리고 사실 그 선언을 들은 당사자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소설 같은 이야기로만 여겨질 것이다.
암과 싸울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암이 찾아온다면 참 여유가 있을 터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보니 바라는게 있다면 내게만은 그러한 선언이 안 내려졌으면 하는 것이다.
또 만일 불가피하게 부닥쳐야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발견하기 위해 조기검진 같은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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