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저수가 정책' 딜레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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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애항 |
작성일 | 2005-12-14 14:28:30 |
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건강보험료를 적절한 수준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저부담, 저급여 체계로 \'진료비 할인제도\'에 머물고 있는 지금의 건강보험이 진짜 보험의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적절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복지부는 암환자와 심장수술, 뇌수술을 받는 환자들의 부담을 대폭 줄이고, 61%에 머물고 있는 급여율을 2008년까지 7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암환자 등 중환자들은 특진비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항목에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고, 진료비 가운데 환자가 내야하는 본인 부담금 비율도 20%에서 10%로 절반 가량 줄어든다. 본인 부담금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병실 식대와 일부 상급병실료도 보험이 적용될 예정이어서 건강보험이 진짜 보험의 틀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대략 3조원정도의 재정이 소요될 예정이다. 암 등 중증질환 급여확대에 1조3천억원, 병원 식대 보험적용에 1조원, 보험이 적용되는 병실 확대에 7천억원 등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 예상되는 건강보험 재정 흑자는 1조3천억원, 흑자분을 다 투입한다 해도 1조7천억원의 추가재정이 필요하다. 더욱이 건강보험은 매년 3조4천억원 가량의 국고보조금을 받을 정도로 재정이 취약해 결국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매년 4% 이상의 보험료 인상을 통해 필요한 재정을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보장성은 강화하고 그만큼 국민 부담은 늘리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12년 만에 전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열렸다.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정착한 \'건강보험\'은 의료의 사각지대를 없앤 매우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이다.
하지만, 효율을 강조하고 양적 성장에 치우치다 보니 저부담, 저수가, 저급여로 굳어져 질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불만에 가득찬 의료 소비자,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병원, 시스템에 위기를 느끼는 정부 등 의료의 참여 주체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977년 일인당 국민소득은 천불 수준, 전국민 건강보험시대가 열린 1989년에는 5천불 수준이어서 당시 경제수준으로는 적정 부담을 하기에 어려운 여건이었다. 결국 저부담, 저수가 정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더불어 \'3시간 대기, 3분 진료\'로 대별되는 건강보험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도 더 이상 저비용, 저급여 체계가 아닌 적절한 비용을 지불해 충분한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의 틀을 바꾸려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적절한 수가가 보장되지 않고서는 의료서비스의 질적인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저수가 정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될 시점이 온 것이다.
물론 보장성 강화와 의료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보험의 3대 주체 가운데 하나인 의료공급자도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의료의 왜곡을 막을 수 있다. 또, 미래형 산업인 의료서비스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수가 인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가 현 건강보험의 원초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체질개선에 나선 만큼 보험자와 피보험자 뿐만 아니라 의료공급자도 만족할 수 있는 본질적인 개선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이충헌 KBS 기자 chleemd@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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