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공공의 적과 승자의 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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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애항 |
작성일 | 2006-02-20 18:02:18 |
노동조합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가 잘 정비된 나라일수록 역설적으로 실업률이 높다. 베커 교수는 이를 ´승자의 저주´로 표현했다. 종국적으로 승자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승자의 저주는 정치에도 적용될 수 있다. ´분열의 정치´일수록 그렇다. 위정자에게 대립구도는 지지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정치적 수단이다. 사회적 통합을 이루고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구악을 일소하고 기득권층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에 국민은 솔깃하다.
이런 작업은 통상 개혁으로 포장된다. 때로는 대중의 분노가 ´개혁의 땔감´으로 쓰인다. 위정자는 손가락을 들어 저기가 ´악의 소굴´이라고 찍어 주면 된다.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대중은 누군가에게 화살을 돌려 자신의 처지를 위무 받으려 한다. 위정자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10년 동안 개혁 장사만 해도 먹고살 수 있다는 한 여권 인사의 말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강남.서울대.삼성은 이제 ´공공의 적´이 되다시피 했다. 부동산으로 치부해 서민에게 박탈감을 안겨주고, 입시 과열로 학부모의 등을 휘게 했으며,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사회세력화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남 사람은 투기세력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떠받치는 중산층의 구성원일 뿐이다. 서울대는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인재의 산실이다. 삼성은 나라 살림을 살찌우는 글로벌 기업이다. 변칙과 반칙이 능해 글로벌 기업이 된 게 아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것은 삼성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X파일은 수구언론과 재벌, 구정치인을 한번에 낚을 수 있는 꽃놀이패다. 불법 도청 자료의 증거 능력을 부인하는 ´독수독과(毒樹毒果)론´을 모를 리 없건만 국민의 알권리를 앞세운다. 미국의 경우를 보자. 닉슨은 불법 도청으로 중도하차한 초유의 대통령이다. 당시 도청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불법 도청으로 민주당이 어떤 피해를 봤는지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닉슨의 탄핵 사유는 국가공권력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그 자체였다. ´혐의´만으로 당사자를 국감 증인으로 세우겠다는 호기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편 가르기는 인과관계의 도치로 정책 혼선을 유발할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양극화 문제다.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분배를 중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양극화는 저성장의 결과다. 우리의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1%의 성장률 감소는 7조원 이상의 소득 ´기회 손실´을 유발한다. 국내총생산 중 월급의 비중을 45%로 잡으면, 1% 저속성장으로 연간 3조원의 월급이 날아간다. 이는 연봉 2000만원의 일자리 15만 개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경기가 악화되고 사람값이 떨어진다. 분배 논쟁은 사회안전망 구축을 요체로 하는 빈곤대책으로 대체돼야 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배아픔의 해소가 아닌 빈곤해소이다.
국정의 반환점에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생활 형편의 개선이다. 경제가 늘 국정 제1순위였다는 항변은 공허할 뿐이다. 경제는 결과로 말하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정치 과잉과 이념 과잉이 투자심리와 기업가정신을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경제는 복잡해 보이지만, ´심리´와 ´흐름´ 그리고 ´유인´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불확실성을 없애 경제심리를 안정시키고 경제자원의 흐름이 순조롭도록 시장친화적 경제정책을 구사하면 된다. 그리고 시장 기회를 포착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완화하면 경제는 활력을 얻게 된다.
참여정부에 허용된 시간은 많지 않으며 노령사회가 코앞에 닥쳤다. 이제라도 실사구시정책을 펴야 한다. 있지도 않은 공공의 적을 가공으로 만들어 공격하면, 승자의 저주를 부를 뿐이다.
조동근 명지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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